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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이란 단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정의 바가 있겠지만,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수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의했던 순간이 있었기에 공유해봅니다.
수동적
10대에 나는, '내 인생 내가 사는거지' 했었다.
20대에 나는, '인생 제법 살아볼만하군. 재미있는 일이 꽤 있어'
30대에 나는, 이거 맞게 가고있는거야? 알것 같더니 더 모르겠네?
40대 중반을 넘어서보니,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정의 내려진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끌려온 인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철저하게 나는 수동적으로 끌려왔음을 알게되었다. 물론, 지금와서 돌아보니 그렇다고 생각을 정리할수있는것이지, 끌려가는 동안에 나는, 내 삶이 이게 아닌데, 이렇게 힘들거였으면 결혼을 왜했나.. 왜 이렇게 아이 키우기가 힘들고, 시댁과의 관계는 복잡미묘한 것들이 많은거지? 심플하게 살고싶은 내 인생의 가치는 저 멀리 멀리로... 가 버린것 같아서 몇년동안 꽤나 슬펐고 힘들었다. 그때 의사의 진단을 받아보았다면 우울증으로 진단되었을것이다. 아이, 남편, 가족, 소중한 지인들에게 끌려가는 수동적인 삶을 살고있었던 내가 보였다.
수동적으로 끌려온 내 인생에 먹먹함이 느껴진 순간, 나는 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에 먹먹함이 따라왔다. 아마도 내가 그 힘들고 긴 터널을 막 나오고 있던 시점일것이다. 끌려가는 수동적인 이 삶이, 나를 진짜 '나'로 만들어준것은 아닐까. 내 존재의 이유, 내 존재의 값어치가 비로소 매겨진것은 아닐까.
'너무 예쁜 두 딸의 엄마',
'긴 고민거리를 같이 나눌수있는 내 남편의 아내',
'멀리 떨어져있지만 존재만으로 좋은 오빠들의 동생',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제 만난것같은 소중한 내 친구들의 친구인 나',
'도움이 되고 이야기 나누고픈 동료, 지인'.
나를 명명해주는 이들로 인해 수동적으로 정해진 나, 바로 나의 존재의 값임을 알았다.
'내 인생, 내 것이지, 내 인생 내가 사는거지' 할 때보다, '내것 아니지, 명명되는것이지, 이들이 있어 내가 있는것이지' 하고 느껴지는 순간, 먹먹함과 함께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가슴이 벅차올랐고, '이것이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 때 이 감정이란, 참 설명이 쉽지않다.
이 날 이후, '수동적'이란 단어는 저에게 꽤 '괜찮은' 단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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